중문 신사터(현 중문성당) 희생자 명단(7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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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문지역 사건

<4> 중문 신사터(현 중문성당) 희생자 명단(71명)

중문성당 0 203

<중문리 신사터>

    중문리 집단 학살 터 중 가장 참혹한 학살극이 벌여진 곳은 중문리 ‘신사터’이다. ‘신사터’는 일제강점기에 신사가 있었던 곳으로 현재 중문천주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서는 중문리 주민 34명을 비롯하여, 강정리 주민 6명, 대포리 주민 1명, 도순리 주민 2명, 상예리 주민 2명, 상천리 주민 5명, 색달리 주민 17명, 하예리 주민 2명, 하원리 주민 1명, 회수리 주민 1명 등 총 71명이 희생되었다. 특히 12월 17일 중문리 주민 20여명은 도피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80대 노인에서부터 2살 난 아기에 이르기까지 무참히 희생됐는데, 일가족이 함께 집단 총살되는 비극이 많았다. 


  중문리 ‘신사터’에서는 중문리 주민이 가장 많이 총살당했는데, 전부 34명이 희생되었다. 

1948년 11월 12일에는 2명이 군경에 의해 희생되었고, 12월 5일에는 무장대 관련자로 오인 받아 8명이 희생되었다. 같은 날인 12월 5일 색달리 주민 고두회 외 1명도 무장대 관련자로 오인 받아 총살당했다. 12월 17일에는 도피자 가족이라는 명목으로 중문리 주민 20명, 색달리 주민 강유생 외 6명, 회수리 주민 1명 등 총 28명이 토벌대(9연대 군인, 경찰)에 의해 집단 총살당했다. 이후 중문리 주민은 12월 22일과 24일에 각각 1명, 1949년 1월 5일과 8일에 각각 1명이 무장대 관련자로 오인 당해 토벌대(응원경찰)에 의해 희생되었다. 


  강정리 주민은 모두 6명이 희생되었는데, 1948년 12월 10일 임수연의 일가족, 처와 며느리, 손자, 손녀 등 5명은 아들 임경욱이 무장대 관련 활동으로 인해 무장대 관련 가족이라는 이유로, 이병출은 도피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토벌대(응원경찰)에 의해 총살당했다. 같은 날 하예리에서도 부부 2명이 무장대 관련자로 오인 받아 경찰에 의해 총살당했다.


  대포리 희생자 임선은 아들 전재평의 행방을 모른다하여 도피자 가족으로 오인 받아 1948년 12월 15일 토벌대에 의해 총살당했다. 


  도순리 주민 2명 중 희생자 이평연은 1948년 11월 25일 토벌대에 연행된 후 희생되었고, 한봉옥은 12월 1일 도피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토벌대(경찰)에 의해 총살당했다. 


  상예리 희생자 강시인은 무장대와 관련 있다는 이유로 1948년 11월 17일, 희생자 김경득은 1949년 1월 5일 도피자라는 이유로 응원경찰에 의해 총살당했다. 

  중문리 ‘신사터’에서 총살당한 상천리 주민 5명은 일가족이다. 부친 정태옥이 1948년 12월 15일 군인에 의해 연행된 후 총살당한 후, 처 백유생과 딸 3명은 12월 18일 연설이 있으니 모이라고 하여 중문지서에 모였다가 남편 정태옥이 총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항의하다가 총살당했다.  


  색달리 주민은 총 17명이 희생되었는데, 1948년 10월 11일 희생자 변상찬은 도피생활을 하다가 순경에게 발각되어 연행된 후 총살당했으나,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채 행방불명되었다. 11월 11일 희생자 김정수는 무장대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중문지서에 연행된 후 경찰에 의해 총살당했다. 12월 16일 최기열의 일가족 아들과 딸 등 6명은 남편 송희창이 입산하자 도피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경찰에 연행된 후 토벌대(경찰)에 의해 총살당했다. 


  하원리 희생자 김규남은 도피생활 하던 중, 1948년 12월 13일 토벌대에 발각되어 중문리 ‘신사터’에서 총살당했다.


연번 사건일자 인원 성명      거주지     성별 연령 비고

1 1948.10.11 1명 변상찬 색달리 21 행불/토벌대 희생

2 1948.11.11 1명 김정수 색달리 68

3 1948.11.12 2명 김석홍 중문리 18

      김평두 중문리 20

4 1948.11.17 1명 강시인 상예리 27

5 1948.11.25. 1명 이평연 도순리 35

6 1948.12.01. 1명 한봉옥 도순리 48  

7 1948.12.05 10명 강계일 중문리 61

      강달형 중문리 57

김원서 중문리 41

이남호 중문리 48

이부옥 중문리 42

이유생 중문리 42 이명 이계표, 이종남

이춘생 중문리 34 김봉수의 처

홍문인 중문리 59

고두회 색달리 47

고잠       색달리 49

8 1948.12.10. 8명 김춘화 강정리 27 임경욱의 처

양시연 강정리 59 임경욱의 모친

이병출 강정리 33

임○○(임경욱의 자) 강정리 3 김춘화의 딸

임○○(임경욱의 자) 강정리 1 김춘화의 아들

임수연 강정리 63 임경욱의 부친

고신홍 하예리 85 문명화의 남편

문명화 하예리 57 고신홍의 처

9 1948.12.13 1명 김규남 하원리 28 김병두의 아들

10 1948.12.15 2명 임선    대포리 66 전재평의 모친

정태옥 상천리 51 백유생의 남편

 정무선, 정이선, 정수선 부친

11 1948.12.16 6명 송명호 색달리 9 송희창, 최기열의 차남

송정호 색달리 11 송희창, 최기열의 장남

송홍자 색달리 7 송희창, 최기열의 장녀

송○○ 색달리 5 송희창, 최기열의 차녀

송○○ 색달리 3 송희창, 최기열의 삼남

최기열 색달리 30 송희창의 처, 송정호, 송명호, 송홍자, 송○○의 모친

12 1948.12.17. 28명 강유생 색달리 65 고창두의 모

김복경 색달리 38

※ 도피자가족 김신경 색달리 59 김춘옥의 부친

집단학살 김영지 색달리 62 김권신, 김권잠의 부친, 김정화의 오빠

김정화 색달리 45 김영지의 여동생

김춘옥 색달리 16 김신경의 딸, 김태백의 누나

송백송 색달리 45

강춘매 중문리 26 김석부의 처, 김성언의 자부

김광웅 중문리 8 김묘생의 아들, 김무웅의 형

김무웅 중문리 6 김묘생의 아들, 김무웅의 동생

김성언 중문리 46 원이만의 남편, 김석부의 부친

김수일 중문리 3 김석부, 강춘매의 아들, 김성언의 손자

김순지 중문리 2 김석부, 강춘매의 딸, 김성언의 손녀

김신지 중문리 4 김묘생의 딸

김여수 중문리 68 조계생의 남편, 김묘생의 부친

서대포 중문리 81 김인학의 모친, 김택수의 조모

양두천 중문리 24 원응석의 처, 원갑길, 원신생의 모친

양만강 중문리 8 양정두, 오병생의 딸

양○○ 중문리 2 양정두, 오병생의 딸

양정원 중문리 13 양두정, 오병생의 딸

양창학 중문리 24 양두정, 오병생의 아들

오병생 중문리 33 양정두의 처, 양정원, 양창학, 양○○의 모친

원갑길 중문리 4 원응석, 양두천의 아들

원신생 중문리 7 원응석, 양두천의 딸

원이만 중문리 45 김성언의 처, 김석부의 모친, 이명 원기만

조계생 중문리 57 김여수의 처, 김묘생의 모친

현재호 중문리 49 이보택의 모

이용옥 회수리 20

13 1948.12.18 4명 백유생 상천리 48 정태옥의 처, 정무선, 정수선, 정이선의 모친

정무선 상천리 8 정태옥, 백유생의 딸

정수선 상천리 5 정태옥, 백유생의 딸

정이선 상천리 2 정태옥, 백유생의 딸

14 1948.12.22. 1명 이묘생 중문리 47 강달형의 처

15 1948.12.24. 1명 오도아 중문리 32 김성추의 처

16 1949.01.05. 2명 김경득 상예리 37

홍석자 중문리 38

1949.01.08. 1명 강사희 중문리 22


<종합> 

1. 총 희생자 수: 71명


2. 마을별 희생자 수: 중문리 34명, 색달리 17명, 강정리 6명, 상천리 5명, 도순리 2명, 상예리 2명, 하예리 2명, 대포리 1명, 하원리, 1명, 회수리 1명 


3. 중문리 : 중문리 ‘신사터’에서 집단 총살당한 중문리 주민은 전부 34명이다. 1948년 11월 12일 이유도 모른 채 2명이 군경에 의해 희생되었고, 동년 12월 5일 무장대 관련자로 오인 받아 토벌대(경찰, 9연대)에 의해 8명이 희생되었다. 동년 12월 17일 도피자 가족이라는 명목으로 20명이 토벌대(경찰, 9연대)에 의해 희생되었다. 이후 동년 12월 22일 1명, 12월 24일 1명, 1949년 1월 5일 1명, 1949년 1월 8일 1명이 무장대 관련자로 오인 당해 토벌대(경찰)에 의해 희생되었다. 


4. 강정리 : 중문리 ‘신사터’에서 총살당한 강정리 주민은 전부 6명이다. 1948년 12월 10일 임수연의 일가족, 처와 며느리, 손자, 손녀 등 5명은 아들 임경욱이 무장대 관련 가족이라는 이유로, 이병출은 도피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토벌대(경찰)에 의해 집단 총살당했다. 


5. 대포리 : 희생자 임선은 아들 전재평의 행방을 모른다하여 도피자 가족으로 오인 받고, 1948년 12월 15일 중문리 ‘신사터’에서 토벌대에 의해 총살당했다. 


6. 도순리 : 중문리 ‘신사터’에서 총살당한 도순리 주민은 2명이다. 희생자 이평연은 1948년 11월 25일 토벌대에 연행된 후 희생되었고, 한봉옥은 12월 1일 도피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토벌대(경찰)에 의해 총살당했다. 


7. 상예리 : 희생자 강시인은 무장대와 관련 있다는 이유로 1948년 11월 17일, 희생자 김경득은 1949년 1월 5일 도피자라는 이유로 중문리 ‘신사터’에서 응원경찰에 의해 총살당했다.  


8. 상천리 : 중문리 ‘신사터’에서 총살당한 상천리 주민 5명은 일가족이다. 부친 정태옥이 1948년 12월 15일 군인에 의해 연행된 후 총살당한 후, 처 백유생과 딸 3명은 동년 12월 18일 연설이 있으니 모이라고 하여 중문지서에 모였다가 남편 정태옥이 총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항의하자 중문리 ‘신사터’에서 총살당했다.  


9. 색달리 : 중문리 ‘신사터’에서 총살당한 색달리 주민은 전부 17명이다. 1948년 10월 11일 희생자 변상찬은 도피생활을 하다가 순경에게 발각되어 연행된 후 총살당했으나, 시신을 수습하지 못해 행방불명되었다. 동년 11월 11일 희생자 김정수는 무장대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중문지서에 연행된 후 경찰에 의해 총살당했다. 동년 12월 5일 고두회 외 1명은 무장대 관련자로 오인 받아 총살당했고, 동년 12월 16일 최기열의 일가족 아들과 딸 등 6명은 남편 송희창이 입산하자 도피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경찰에 연행된 후 토벌대(경찰)에 의해 총살당했다. 이어 12월 17일 강유생 외 6명은 도피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경찰에 연행된 후 토벌대(경찰)에 총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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