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해 한용운의 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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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해 한용운의 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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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 수 없어요--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날을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詩)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만해 한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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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靑山)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蒼空)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

성냄도 벗어 놓고 탐욕도 내려 놓고

물 같이 바람 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고려 말 고승 나웅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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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왔누나' 온 곳을 모르면서

나는 있누나' 누군지도 모르면서

나는 가누나'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나는 죽으리라' 언제 죽을지도 모르면서 

                            --철학자 야스퍼스--

​          “수덕사의 여승”

인적 없는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

흐느끼는 여승의 외로운 그림자

속세에 두고온 임 잊을 길 없어

법당에 촛불켜고 홀로 울 적에

아 수덕사의 쇠북이 운다


산길 백 리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

염불하는 여승의 외로운 그림자

속세에 맺은 사랑 잊을 길 없어

법당에 촛불켜고 홀로 울 적에

아 수덕사의 쇠북이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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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랑 염소 한마리입니다"


                ​“富와 명예”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자체를 즐기라.

-배를 곯을지언정 의미 없는 일은 하지 마라.

-돈만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영혼을 잃기 쉽다.

-명예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기쁨을 잃기 쉽다.

-권세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친구를 잃기 쉽다.

-자기가 사랑하는 일을 하고, 일을 위하여 일하라.

-그러면 나머지 것들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다.

                                        --차동협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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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찾아온 맑음”

깊은 거처에서 성곽을 굽어보니,봄 가고 여름인데도 맑고 서늘하다.

하늘은 그늘진 풀을 가엾이 여기고,세상은 늦게 갠 하늘을 더욱 귀히 여기네.

높은 누각 또한 한층 아득해 보이고,작은 창엔 은은한 저녁빛 스며드네.

남방의 새는 젖었던 둥지가 다 마르자,돌아가는 날갯짓이 한결 가볍구나.

                                               --이상은(李商隱·812∼858)--


긴 장마 끝의 햇빛은 평소와 다르다.

늘 있던 빛인데도 새삼 반갑고, 축축하던 풀잎이

반짝이는 모습까지 눈에 들어온다.

이상은은 바로 그런 순간을 붙잡았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하늘은 그늘진 풀을

가엾이 여긴다’는 구절이다.

오랜 비에 젖은 외진 곳의 풀이 저녁 햇살을 받는다.

시인은 그 변화를 지나치지 않았다.

오랫동안 불운과 정치적 갈등에 시달렸던 자신의

처지가 그 풀과 겹쳐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늦게 갠 하늘’은 단순한 날씨가 아니다.

오래 흐렸기에 귀해진 맑음이다.

창으로 저녁빛이 스며들고, 젖었던 둥지는 마르며, 돌아가는

새의 날갯짓도 가벼워진다.

달라진 것은 몇 줄기 햇빛뿐인데, 세상을 보는 마음은

전과 같지 않다.

                              --이준식의 한시 한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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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만 하는

‘얌체기도’에도 응답이 있을 까요?


첫째, '오냐 주마'(Yes)

둘째, ‘안 돼’(No)

셋째, ‘기다리라’(Wait)

넷째, ‘다른 것을 주마(Other)


하느님은 위 네가지 방법으로 응답을 주신다.

“나는 네가 너무 슬플 때

너와 함께 있고 싶어서 눈물이 되었다”


                             차동엽 신부

                             잊현진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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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종교가 번창한데

사회 문제가 왜 그렇게 많나?


20세기 인도의 성자 간디는

“나는 그리스도를 좋아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좋아하지 않는다”


교회는 죄인들을 위한 병원이지

성좌들을 모신 박물관이 아니다. 


                 --잊혀진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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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 “이 세상에 신이 있다면 대체 어디에 숨어있나?”

...................................................................


20세기를 대표하는 사상가 카를 힐티는 같은 통찰을

보다 직설적으로 전합니다.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신의 본질이다.

그렇지 않으면 신은 신이 아니며

신을 설명할 수 있는 인간은 인간이 아니다”


같은 취지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삼단논법으로 말합니다.

“인간은 유한하다. 하지만 신은 무한하다.

유한한 것은 결코 무한한 것을 밝혀낼 수 없다.

따라서 유한한 인간은 결코 무한한 신을 밝혀 낼수 없다“

    

베이컨은 우리가 조금만 우리 처지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기만 하더라도 금세 수긍이 가게 마련입니다.

 

광활한 우주에 떠도는 모래알과도 같은 지구에서 살고

있는 점보다 미소한 존재인 인간이 과연 삼라만상의

비밀에 대하여 얼마나 인식할 수 있을까요?


# 인간은 신의 존재를 부분적으로는 체험 할 수 있다.

  하지만 완전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신은 증명되는 존재가 아니라 체험되는 존재다.

# 신은 바로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 계신다.

  너무 가까운 곳에 계셔서 찾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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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 공간>

원 안의 것을 아는 것, 원 밖의 것을 모르는 것이라고 했을 때

아는 것이 많으면 원은 커질 것이다.

즉 아는 것이 많으면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진다는 것으로 우주에

대하여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이 많아진다는 의미이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살고 있는 집, 지구는 우주에서 별 축에도

끼지 못할 만큼 미소하다.

우주에 떠도는 평범한 별 하나에 지나지 않는 태양계, 그 태양에

딸린 행성하나에 불과하다.


그 지구위의 먼지 같은 존재인 인간이 지금까지 집적한 정보량

역시 초라하고 알량하다.

아직도 탐구해야 할 미지의 영역은 거시적으로나 미시적으로나

무한대이다.

                                               --질문, 11에 대한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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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적사를 찾아서”

향적사가 어디 있는지 모른 채,

구름 걸린 봉우리로 몇 리를 들어가네.


고목 우거진 길엔 사람 자취 없고,

깊은 산 어디선가 종소리 들려온다.


샘물은 험한 바위에 목메고,

햇살은 푸른 솔 사이에 서늘하다.


저녁 어스름 텅 빈 연못가,

참선 속에 마음의 독룡을 다스리노라.

              --왕유(王維·701∼761)--



 "고요 속으로"

시인은 향적사를 찾아 나서지만 정작 절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 대신 구름 낀 봉우리, 고목 우거진 숲길, 먼 종소리, 험한 바위 위의 샘물,

서늘한 소나무 빛이 차례로 펼쳐진다.

절은 보이지 않는데도 그 존재는 외려 더 또렷해진다. 시는 또 ‘없는 것’과

‘들리는 것’을 절묘하게 엮는다. 길은 있으되 인적은 없고, 절은 보이지 않는데

종은 울린다.

바위에 부딪힌 샘물은 목멘 듯 흐르고, 소나무 사이의 햇빛은 이상하리만큼

차갑다. 소리와 빛이 살아 있는데도 시의 정조는 더 깊이 가라앉고, 청각과

시각의 선연한 대비가 인상적이다.

역대 비평가들이 이 두 구를 ‘잘 다듬어진 시구의 본보기’라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텅 빈 못가에 이른 시인은 마침내 내면의 소요(騷擾)와 마주한다. 불교 고사 속

독룡(毒龍)은 전설 속 괴물이면서 동시에 마음속 번뇌이기도 하다.

결국 시인이 찾아간 것은 명찰(名刹)이 아니라, 자기 내면을 잠재울 한 자리였다.

절보다 먼저 고요에 닿는 일, 왕유의 시는 그 오래된 비밀을 조용히 일러 준다.

                                                        --성균관대 명예 교수--

  

8 Comments
미카엘 05.17 20:03  
<신의 존재 즉 창조주 하느님>
아무것도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은 움직이고 있다.
따라서 모든 것을 움직이게하는 존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무것도 스스로의 움직임에 대한 원인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의 움직임에는 반듯이 원인이 있다.                                                     
따라서 모든 것의 원인이 되는 원인이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
미카엘 05.17 20:51  
<원수를 사랑하라>
하느님께서는 착한 사람과 악인을 다같이 사랑하실까?
우리들 주변에서 불량한 사람이 잘사는 부자를 볼수 있다.
원수도 사랑하신다면 지옥에는 누구를 보내실까?
미카엘 05.19 05:07  
"창조와 진화에 관한 생각은 영원히 평행선인가?"
-창조론과 진화론은 대립 관계가 아니고 보완적 관계이다.
-과학과 종교도 대립관계가 아니고 보완적 관계다.
-과학이 발달 새로운 것을 밝혀내면 신비 또한 늘어난다.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다는 것을 밝혀냈지만 그 원인은 신의 세계다.
                                                    --차도엽 신부 지음, "잊혀진 질문"을 읽고--
미카엘 05.19 17:03  
<선 무당이 사람잡는다>
"종교 없는 과학은 온전히 걸을 수 없고, 과학 없는 종교는
온전히 볼 수 없다"는 명언은 영구적으로 유효 할 것이다.
                                                        --프랜시스 베이컨--
미카엘 05.19 17:22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살고 있는 집>
지구는 우주에서 별축에도 끼지 못할 만큼 미소하다.
우주에 떠도는 평범한 별하나에 지나지 않는 태양계,
그 태양계에 딸린 행성 하나에 불과하다.
미카엘 05.21 06:59  
<자유의지>
신은 왜 악인을 만들었는가?
신은 악인을 만든 것이 아니라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을 만들었을 뿐이다.
악인도 선인도 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선택과 결단을 만든 것이다.

자유의지를 주지 않았다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고 로봇을 만든 것이다.
미카엘 05.28 07:02  
<불안>
불안과 무질서는 절망의 징후가 아니라 에너지와 희망의 징후이다.
체념한 사람에게는 불안이고 뭐고가 없다.
불안은 희망을 갖인 사람이 누리는 특권, 곧 생의 에너지인 것이다. 
                                                            --영국 역사학자 베로니카--
미카엘 06.20 20:48  
<자유의지>
하느님께서는 로벗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고
자유의지를 갖인 사람을 창조하신 것이다.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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