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꾸르실료 교육 참가기 *** 제47차 미카엘 1 772 07.21 12:37 "꾸르실료 교육 참가기"2004, 8,19, 성 이시돌 피정의 집에서 있었던 3박 4일 간의 꾸르실료 교육은 잊을 수 없는 감동의 추억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교육을 처음 권유 받았을 때, 교육 받고 오면 성당 일을 이것 저것 맡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에서 바빠서 갈수 없다고 사양하였다.이런 일이 있고난 후로 몇일이 지나서였다. 평소 신뢰하던 자매님과 성당에서 마주쳤다. 그 자매님 하는 말이 "교육을 왜 안 갈려고 하세요? "그 교육은 아무나 갈 수 있는 교육이 아닌데...! 교육 받고 오면 꼭 무슨 활동을 해야하는 것도 아니고, 갔다 온 사람들끼리 한달에 한번 모이는 일 밖엔 없는데..." 하는 것이였다. 이 더운 여름에 꼭 해야할 일도 없는데 피서 겸 교육이나 갔다 올까? 승낙을 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였다. 몇일 전부터 만나는 형제자매님들마다 "축하합니다"하고 인사를 하는 것이였다. 뭘 축하한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수가 없었다. 이러기를 두주일 쯤 지나서 였다. "본당 게시판에 꾸르실요 교육 참가 예정자"고우식 다니엘, 안춘식 미카엘 이라고 게시하고 있었다. 그때야 형제자매님들이 축하한다는 인사 말을 알아 차릴 수 있었다.그것도 잠시... 교육 받으려 가는 것이 축하 받을 일인가?시간이 흐르면서 궁금증 만 더해 갔다. 우식이 다니엘 형제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니엘! 교육 날자가 얼마 남지 안했구만. 준비물은 뭐래? "작년에 갔다온 장갑이 형제가 하는 말이 "밤이면 간단하게 술도 한잔식 하구요, 고스돕도 한다고 합디다. 그런데 매점에는 없는 것 없이 다 있는데 술만 없다고 합디다. 난 술이나 몇 병 가지고 갈래요. 참 해수욕도 간다고 합디다" 라고 하는 것이였다. "참 잊지 말고 수영복도 가지고 갑서!" 하는 것이였다. 전화를 끈으면서... 괜히 마음을 썼구만! 이건 교육이 아니고 피서가는 거야 피서! 드디어 교육 날자가 다가 왔다. 오후 4시 출발 시간이 되자 차를 몰고 성당으로 갔다.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하였다. 더위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자매님들이 눈에 뜨이기도 하고, 사목회장이랑 형제자매님들이 한분 두분 모여들기 시작하였다.그건 그렇고...형제자매님들과 담소하고 있는 우식이 다니엘 가까이 차를 몰고가 "다니엘! 우리랑 출발 할 시간이야!" 하면서 차에 오르기를 재촉하였다. 가까이 있던 사목회장이 이 말을 듣고 하는 말이 "형님 차로 가려고?성당 봉고차로 가요. 우리 다같이 갈건데..." 하는 것 이였다.결국 차를 세워두고 10여명의 형제자매님들과 성당 봉고차에 합승을 하였다. 출발하자 묵주기도가 시작되었다. 어디들 가는고?우리들 교육 받으러 가는 것 말고 또 다른 행사가 있는가? 묻고 싶었지만 기도 때문에 물을 수가 없었다.묵주기도 5단이 끝날 무렵 이시돌 회관 현관에 도착하였다.다른 성당에서 온 형제자매님들로 주변이 붐볐다. 이윽고 등록을 마친 다음 2층 강당으로 안내되었다.아니 이게 뭐람!신부님들을 비롯하여 형제자매님들로 강당이 꽉 차 있었다.둥둥거리는 북소리와 관현악 연주소리에 압도 당하여 정신이 아찔하였다. 환영식 겸 미사를 마치자 조금은 진정이 되였다. 이어 교육기간 동안 지켜야 할 주의사항이 전달되였다. 핸드폰은 물론 시계까지도 보관 시켰다. 그리고 말까지 못하게 하는 것이였다. 교육 받으러 왔다가 졸지에 벙어리가 되고 만 것이다.내 이럴 줄 알았어! 뭔가 이상하더라니깐... 이건 신병 훈련소도 아니고... 교육 받으러 가는 사람에게 축하한다고 할 때부터 내 알아봤어...장관이! 요 거짓말 쟁이! 밤이면 술도 한잔식하고, 고스돕도 한다고! 나가면 가만 안둘 테다. 밤이 되었는데 지금이 몇시인지, 올림픽 4강진출 기념 축구가 어떻게 되어가는지, 옆사람에게 인사를 건낼 수도 없고, 답답하기 이를 대 없었다.첫날 목요일 밤을 자고 났다. 아침을 기하여 침묵이 해제 되었다. 막상 할 말이 없었다. 서로 명찰만 바라보고 빙그레 웃을 따름이였다. 아침 식사를 마치자 강당으로 안내되었다. 미리 편성된 분단별로 좌석을 지정 받았다. 이내 두루마리 속의 하느님과 만남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50분가량 주님의 용사들로부터 강의를 듣고, 10분간에 걸처 요약한 글을 제출하라는 것 이였다.이어 분단 공동으로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 제출토록 하였다. 연사들의 강의를 감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는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다.크레파스를 잡아 본지가 얼마이던가!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강의를 듣고 있으려면 우선 졸음이 쏟아지고, 어께가 저리고, 등이 쑤시고, 오금이 당겨 앉아 있기조차 힘들었다. 안개속을 해매는 것 같이 몽롱해 지기도하고, 귀가 멍멍하여 강의 내용이 잘 들리지도 않고, 가슴이 두근거려 필기를 제대로 할수가 없었다."꾸~르~실~요! 분단 성 바오로!" 를 "성 베드로!" 라고 하기도 하고... 왜 그렇게 자주 틀리는지. 정상적인 내가 아닌 것 같았다. 주일 미사나 다니고, 이제까지 해온 방식대로 살 일이지 늙거가면서 교육은 무슨 교유이란 말인가!그만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차가 있어야 돌아가지! 이 산속에서 걸어서 나갈 수도 없고, 택시를 부를 수도, 또 예까지 바래다 준 형제자매들 볼 낯도 없을 것 같아 죽으나 사나 이틀 밤만 견디기로 마음 먹었다.2일 째되는 날 금요일 밤이였다. 2층 선체 조배실로 가기 위하여 분단별로 복도로 나섰다. 미로처럼 연결된 1,2층 복도 양쪽에 무릎 꿇고 양팔을 든 형제자매님들이 끝없이 이어져 기도를 바치고 있었다.이게 무슨일 이지!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누구를 위하여 기도를 하고 있을까? 뭣 때문에 벌을 서고 있을까?몸이 확 달아올라 중심을 잡고 걷기 조차 힘들었다.성체 조배실에 도착하였다. 성체 앞에 바오로 분단 아홉 형제가 무릎 꿇고 둘러 앉았다. 나의 고백은 이런 것이였다.주님!불러 주실 여면 보다 일찍 불러 주시지 않으시고백발이 성성하여 늙은 첨지 되어 갈 때야 부르셨단 말씀이십니까?살아온 지난 날들을 되 집어 보면잘못한 일들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1) 아이들을 키워놓고 보니 부모님에 대한 잘못을 이제야 알 것 같은 데 가시고 안 계시니 어떻게 하면 좋단 말입니까?2) 이 세상에 왔다가 마음 놓고 살아보지도 못하고 고생만하다가 먼저 가버린 집 사람에 대한 못다한 미련,3) 양심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일신상의 안위를 위하여 불의의 편에서 침묵하였던 일. 4) 이웃의 어려움이나 슬픔을 외면 한체 지 잘난 척 거들먹 거리면서 살아온 일.5) 모임 이나 소 공동체 안에서 대안을 제시 하지도 못하면서 불평과 불만으로 두시령 거렸던 일.6) 순간의 쾌락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겨 안겨 주엇을 것 같은 일. 이중에서도 80년대의 민주화로 가는 길목에서 나는 어디서 무엇을 했던가? 용서를 빌고 화해를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았다. 뒤틀린 삶을 이제와 되돌릴 수도 없고 어떻게하면 좋단 말인가.회한의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9명의 형제들이 통곡하는 눈물 바다가 되어 버린 것이다.토요일 3일 째 되는 날이였다. 왠지 날아 갈 것만 같았다. 그렇게 졸리던 졸음도 도망가 버렸고 몸도 마음도 상쾌하였다. 새벽에 예수님을 배온 탓일까?아니면 눈물을 흘리고 나서 후련 해진 것일까?첫 날과 둘째 날과는 달리 삼일 째 되는 날부터는 즐거운 마음으로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4일 째 일요일 마지막 날이였다. 12회 롤료를 끝으로 "저의 이상과 저의 애덕의 정신과 저의 모든 것을 바치어 그리스도께서 제 영혼을 더욱 완전히 지배하시도록노력 하겠나이다" 선서를 한 후 손에 손을 잡고 음악과 율동이 어우러진 신나는 한마당 놀이를 끝으로 교육 일정을 모두 마쳤다.꽃다발을 한아름 안고 마중 나온 가족들과 함께 억수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현관을 나설 때는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 같았다.교육을 마친지 10여일 쯤 지나서 였다. 폭풍우가 지나가고 다시 평상시 상태로 돌아온 것 같았다. 우선 기도상에 쌓아 두었던 빨랑카를 비롯하여 사진들과 기도문들을 새 엘범에다 끼우고 선물받은 책과 기념품은 목록을 만들어 뒷장에 끼어 넣었다. 그길로 본당 명의로 된 빨랑카를 들고 시내 액자가개를 향하여 차를 몰았다. 운전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어쩌다 내가 성당을 다니게 되었는지. 하마터면 큰일 날번 했지 않는가! 술독에 빠저 허우적거리거리다가 이 좋으신 주님을 모르고 갈번 했지 안 해!감사합니다가 저절로 입에서 흘러 나왔다"이번엔 운전대 앞 십자가 고상 속에 계시는 주님께 물었다. 주님! 이 고집쟁이가 어떻게 해서 성당을 다니게 되었을까요?주님께서 답을 주신다면... "너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어...!'텅!' 소리를 잊어버리지 않았겠지?" 하실 것만 같았다. 내 딴엔 직장에서 한참 잘 나간다고 자부할 즈음 전연 예상치 않은 암초를 만난 것이다. 집사람이 어린 것들을 남겨 둔채 홀연히 저 세상으로 떠나 버린 것이다. 앞이 캄캄하였다. 슬픔에 잠겨 봉분이 지어 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마지막 이별을 하고 있을 때였다.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같이하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체격이 외소하고 연세가 들어보이시는 분이 무거운 묘비석을 등에 엎고와 "텅!' 하니 내려 놓는 것 이였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 듯한 충동과 함께 그 소리가 마지마 작별의 인사 소리 같이 들였다. 그때의 "텅!" 소리.지워지지 않는 소리로 가슴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성당과 관련 있는 학교(신성여고)를 다녔음에도 성당엘 나가지 못하고 주춤 거리더니 죽음을 눈앞에 두고야 천주교에 귀의했다. 그때의 "텅!" 소리가 "나 대신 성당에나 다니세요" 라는 마지막 남기는 말로 들여왔다. 이런 일이 있고 난 후로 시간이 나거나, 밤 근무시간 이면 성서를 읽게되고, 통신 교리공부도 하게 되었다.얼마 안가서 그분을 대부님으로 삼아 성당을 다니게 되었고, 주일이면 그분의 뒷모습을 바라 보면서 미사를 드리는 천주교 신자가 된 것이다.나는 책상 앞에 걸린 액자속의 빨랑카를 아침 저녁으로 바라본다. 광목 원단에 주로 녹색 물감을 사용하여 그린 단조로운 그림이다. 낮고 부드러운 두 능선이 조화롭게 교차하는 사이로 냇물이 흐르고, 능선에는 곧게 자란 세그루의 나무가 서 있다.능선 풀밭에는 이슬 같기도 한 별들이 풀잎에 내려와 머물고 있고, 끝없이 펼쳐진 하늘에는 별들의 속삭임인양 시 한수가 드리워져 있다. "나는 행복한 심부름 꾼"크고 작은 별들이 땅속에 뿌리를 박고 꽃잎과 색갈과 향기로 제 역활을 다 하듯개가 갖인 모든 것은 오로지아버지 안에서만 이루어 집니다. 남에게 주고 픈 마음 너무 커서 내 마음은 항상 이웃을 향해 서성대고 있습니다. 나는 행복한 심부름 꾼 항상 기도하며 모든 일과 열정을 당신께 봉헌합니다.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면 큰 강을 건너 온 기분이다.3박 4일간의 꾸르실료 교육은"나 속에 나와 나 속에 나 아닌 또 다른 나와 싸움이였다" 교육이 아니고 마귀와 전쟁을 한 것이다. 용사들의 강의를 듯고 있을 때 등이 쑤시고, 머리가 아프고, 귀가 멍멍하던 그 이유를 이제야 알것 같았다. 아집으로 가득 찬 머릿 속을 청소해 내고 주님의 말 씀으로 새롭게 채우기가 그렇게 힘들었나 보다. 형제자매님들의 수백번의 화살 기도가 등에 엎인 마귀에 와 박히면서 온 몸이 아프고 쑤시었나 보다. 주님! 다시는 강 건너에 버리고 온 쓰래기 들을 생각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더러는 손해 볼 줄도 알게 해 주십시오작은 일에 감사하는 겸손도 주십시오 주님!저는 압니다. 주님께서는 절대 공짜로 부리시지 않는다는 것을요몇배로 불리어 값아 주심을 저는 압니다. 미카엘아! 미카엘아! 부르기만 하십시오그냥 뛰처 나가겠습니다. --34차 울뜨레야대회 때 발표했던 원고-- 2005, 11, 20. 중문본당 안춘식 미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