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주년 6.25 전쟁 미카엘 4 188 06.25 16:58 6.25전쟁 참전 유공자 위로연에 참석해참전용사들과 악수하고 있다. "흥남부두 철수 작전" "굳세어라 금순아!" “6월은 호국 보훈의 달” 올해는 6.25 남침 76주년이다1950년 6.25 일요일 새벽 4시에 북한 공산집단은 민족상잔의 비극인 탱크를 앞세우고 38선을 넘어 불법 침략하여 무방비 상태의 남한을 순식간에 무력으로 점령한 우리 역사상 가장 비참한 전쟁이며 지구상 어느 전쟁보다도 가장 처절한 전쟁이었다.전쟁 준비만 해온 북한군을 대적하지 못하고 27일 저녁에 서울을 빼앗기고 정부도 대전으로 옮겨 그 후 미국, 영국등 16개국 UN군이 참전했으나 밀리고 밀려 정부도 다시 대구에서 낙동강 선까지 이르러 부산으로 옮겼다. 그러나 9월27일 UN군이 맥아더사령관 인천 상륙작전을 성공함으로 9월28일에 국군은 용전분투하여 서울을 수복하였고 10월1일에 일제히 북진을 개시해 혜산진과 청진까지 진격하여 들어갔다.중공군(중국)의 개입으로 인해전술에 밀려 다시 작전상 오산 장호원, 제천 영월 삼척 까지 후퇴 하다가 반격을 시도 각기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려는 치열한 전투에서 백마고지는 29번이나 주인이 바뀌는 공방전을 벌였으며 철의 삼각지대에는 17번 주인이 바뀌는 전투를 치루었다. 우리 민족의 소원인 남북통일을 목전에 둔 채 다시 후퇴를 해 1951년 1월24일에 서울이 적군의 수중에 들어가 그 후 38선 전역에서 밀고 밀리는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되다 1953년 7월27일 휴전협정이 성립되어 현 휴전선으로 남북이 갈라서게 되고 오늘에 이루었다. 남북한 합한 전사자, 부상자, 민간인 사망자, 행방불명 자등 인적 손실은 무려 520만 명 선에 이르고 이산가족도 1000만명이나 발생하였다. [출처] 동북일보 “낙동강 교두보의 위기”1950년 남침을 했을 때, 북한은 그해 8월 15일 광복절기념식을 부산에서 김일성이 직접 참석한 채 통일기념식으로 치르려는 구상이었다.유엔군 참전으로 이 계획은 불가능해졌다. 북한 당국은8월 15일 이전에 대구라도 점령하라는 명령을 군에 내렸다.이때부터 9월 초순까지 북한군은 대대적인 공세를 펼쳤다.마산, 창녕·영산, 다부동, 포항 전투 등에서 아슬아슬한순간이 이어졌다.북한군의 진격이 조금만 빨랐거나 어느 한 중대라도 거점을지켜내지 못했더라면 낙동강 방어선은 무너지고 미군이 철수해야 했을 위기를 열 번도 더 겪었다. --임용한의 전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