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황사형의 영성(靈性)

홈 > 참여공간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순교자 황사형의 영성(靈性)

미카엘 5 58
ddaf59b5e91fc075d5c3f668ed44f24e_1755003863_94.jpg

 

​"순교자 황사형의 묘" 


3d20e16365540d90fb90827dd4a09639_1755003116_55.jpg

  

"정난주 묘" 

f20a8610d6f09e7de1c9e087877eb094_1754850896_76.jpg

 

​대정 정난주 성지  

​  

3d949ecbf5955efcaac950ad5bdadd3c_1754814163_82.jpg

 

추자도 황경한의 묘


8fe18d0ad67c000d669ada3a1324f765_1754910146.jpg



황사형 백서 원문  


 

        순교자 황사형의 영성(靈性) 


정조 11년 때의 일입니다.

과거시험장에 8도의 인재들이 구름처럼 몰여 들었습니다.

저녘 때가 되어 시험관들이 답안지를 거두어들이다가

경탄을 금하지 못 합니다


과거시험 관리들이 인재를 목말라하던 정조에게 답안지를 올렸습니다.

정조가 경탄한 나머지 초야에 묻혀 사는 선비일 것으로 생각

그 주인공을 부릅니다.

또 한 번 놀랍니다.

17세 밖에 안 되는 홍안 소년 이였습니다.

임금이 놀라 손을 잡고 묻습니다.


네가 누구냐?

저는 창원 황 씨 입니다.

저의 11대 할아버지가 한성판교를 지낸 분입니다.

제 아버지는 황석범 이고 저는 유복자로 태어난 황사형입니다

임금이 11대 명문대가의 귀공자임을 알아봅니다.

한없이 칭찬을 하고 두 가지 약속을 합니다.


스무 살이 되면 높은 벼슬을 주겠다.

잡념을 버리고 학업에만 정진하라.

학업에 정진 할 수 있도록 생활비와 급량 비를 하사하시겠다고 하였다.

  

황사형은 임금님의 뚯을 받들어 공부를 하려 갑니다.

명문대가의 정약종 선생입니다.

정약종 선생은 내분 형제가 계시는데 모두 당대를 대표하는 대 선비들

이였습니다.

 

      --정약현 가계도--


1) 정 약현.......정조 때 사람

                 약종과 약용의 이복형

                 이벽의 손위 누이가 처

                 딸 정난주, 사위 황사형

.

2) 정 약전.......서학의 선구자

                 이벽의 손아래 누이가 처

                 신유사옥 때 흑산도 유배

                 가산어보 저술


3) 정 약종.......최초의 평신도 회장

                 구습과 계급타파운동 운동 주도

                 이승훈과 모의 주문모 신부 초치

                 신유사옥 때 딸과 함께 순교


4) 정 악용.......남인에 속한 이조말 대학자

                 유형원, 이이 뒤를 이어 실학을 집대서

                 강진 유배지에서 19년간 적거생활을 하면서

                 목민심서 등 수많은 저서를 남김.

   

황사형은 영세를 받습니다. 본명은 알렉시오입니다.

그리고 정약현 따님인 정난주와 혼인을 합니다.


황사형은 천주교 신자가 되고 나면서 서울에 올라가서 바로

교리를 가르치고 다닙니다.

승정원의 정승이 임금님께 허락을 받으러 갑니다.

“황사형은 임금님께 하해와 같은 은혜를 입고도 국법을 어기고

천주교를 가르칩니다.

어무(임금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가 내려 잡지를 못하니 윤허해

주십시오. 잡아 국법으로 처리하려합니다”


정조 임금 이 말을 들으시고 아무 말씀도 못하십니다.

한동안 침묵하시다가 선비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글줄이나 읽는 선비들이 벼슬 한자리 하고 싶어서 파당을 지어

당파 싸움을 하고 있는 지금 나는 그에게 중용을 약속했노라.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가벼히 여기고 자기 소신대로 행동하는

것을 보면 그 인품이 고결하다는 것을 알겠다”

  

이분은 11대 명문대가 귀공자입니다.

정심도 한끼 찬밥 먹는 일이 없는 분입니다.

신앙생활에 방해가 된다고 11대 명문대가의 신분을 버립니다.

영광스러운 급양비, 버립니다. 탄탄대로 뚫린 출세길, 버립니다.

신앙생활에 방해 된다면 이세상의 어떤 행복 조건도 다 버립니다.

이것이 순교자들이 걸어가는 모습입니다.

 

1801년 주문모 신부께서 순교하십니다. 이 소식을 배론성지에서 전해

듣고 더 이상 머물지 않습니다. 이제 일어납니다.

교회가 세계교회와 단절되면 죽습니다.

주문모신부님이 살아계시면 중국교회와 연결되는데 신부님께서 돌아

가셨다면 중국교회와 단절된다.

 

황사영은 중국 교회에 보낼 그 유명한 글(천주교 탄압 실상)을 씁니다.

가로 62cm, 세로 38cm 흰 명주천에 붓으로 깨알같이 작은 글자로

한줄에 110자식 122줄에 1만3천3백11자 편지입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황사영 백서입니다.

 

이것을 그해 가을 부연사편에 중국교회에 보내기로 했다가 발각되어

황사영은 능지처참을 당합니다.

조선정부는 황사영이 쓴 편지는 고문서편에 깊히 숨기고 923자 가싸

백서를 만들어 발견되게 합니다.

황사형의 어머니는 관노로 전락되어 거제도로 귀양갑니다.

황사영의 부인 정난주 여사는 관노로 전락 제주도로 귀양을 갑니다.

 

여사가 제주도로 귀양갈 때 황사영과 정난주 사이에 젖먹이 어린

아이가 있었습니다.

엄마가 모정을 버리지 못해 이 아이를 안고가면 성장하여 노예가 된다.

그 어머니는 옷섭에 ‘황사영의 아이’라고 적고 뱃사공에게 추자도

산속에 아이를 버려달라고 눈물로 호소합니다.

사공의 도움으로 아이를 내려놓고 혼자 제주도에 들어갑니다.

아이는 다음 날 아침 오씨 성을 갖인 노인에게 발견되어 두 부부가

목숨을 걸고 아이를 기릅니다.


황사영 백서는 어떻게 되었는가?

100년의 세월이 지나 고문서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된다.

천주교회에 관한 것임을 알고 중국 뮤델교구장께 보내진다.

1925년 79위 시복식 때 한국교회가 교황님께 예물로 봉헌한다.

100년 만에 다시 되돌아온다.

지금은 교황청에 보관 중 이다.

 

                                          --김길수 교회사 중에서--

.


5 Comments
미카엘 08.10 17:51  
<묵상>
황사형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재능을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데 온전히 다 바쳤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내 비록 죄가 많지만 주님께로부터 받은 몸과 마음을 오롯이 도로 받쳐
찬미와 봉사의 제물로 드리오니 어여삐 여기시어 받아 들이 소서'
미카엘 08.11 04:41  
<정조의 가계>
ㅡ할아버지가 영조
ㅡ아버지가 사도세자
ㅡ어머니 혜겅궁 홍씨
ㅡ영조의 계비로 들어간 '정순왕후' 김 계비
ㅡ김 계비가 11세난 증손주 순조를 수렴청정
  하면서 조정이 어지럽게 된다.
미카엘 08.11 17:17  
<정약용과 김정희>
ㅡ두분 정조 시대 실학자. 정약용은 1762년생, 김정희는 1786년생
ㅡ정약용은 강진에서, 김정희는 대정골에서 유배생활을 한다.
ㅡ정약용은 유배생활 중 '목민심서' 등 수많은 저술을 하고,
  김정희는 '새한도'를 남겼고 추사체'를 완성한다.
ㅡ정난주는 정약용의 조카 딸이고  황사형은 조카 사위다.
미카엘 08.12 21:21  
<정난주와 추사>
ㅡ정난주는 1773년 출생, 1838년에 65세 나이로 대정 유배지에서 병사한다.
ㅡ1801년 신유 박해 때 제주로 귀양온다.
ㅡ추사가 제주에 유배오기 2년 전인 1838년 37년간 귀양생활 끝에 병사한다.
ㅡ추사는 정난주의 귀양생활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미카엘 08.12 21:42  
<정약용과 추사>
추사가 정약용보다 14살 아래다. 두분은 같은 실학자로서 절친한 사이로 전해진다.
정약용은 강진에서, 추사는 제주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서로 서신을 주고 받기도하고,
한때는 추사가 강진까지 가서 약용을 만나기도했다고 전한다. .
정약용이 조카 딸인 난주의 유배생활을 물었을 것이고,사망 후 묘의 위치를 비롯 황경한의
소식까지도 물엇을 것이다.
추사 기념관에 위와 관련된 사료가 전연 없어 아쉬웠다.

 주일

 오전 6시~12시 30분

 

 

 

 오후 4시~ 7시

 

 

 평일

 오전10시~12시

 

 

 

 오후2시~20시

 

 

 휴무

 월요일/목요일/공휴일

 

 

 

 

 

 

 TEL

 064) 738-6123

 

 

 FAX

 064) 738-6122

 

 

 E-mail

 lover4826@naver.com

 

  • 오늘 방문자 534 명
  • 전체 방문자 788,549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