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의 정치 중립 미카엘 0 8 11.03 18:40 “군의 정치 중립”조선 고종 때인 1882년 9월 박영효, 김옥균, 서광범 등이 일본에 수신사(修信使)로 파견됐다. 이 행렬에는 근대 문물을 습득하기 위해 10여 명의 소년이 동행했다. 이들 중 박굉유라는 16세 소년이 있었다. 당시는 세계열강의 침입이 시작되던 시기였다. 개화파들은 나라를 지키려면 근대 군사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여겼다. 물론 이러한 생각에는 정치적 속셈이 있었지만, 어찌 됐든 1881년부터 일본의 군사학교인 호산학교에만 조선 소년 14명이 입학했다. 단, 호산학교는 하사관 과정이었다. 최초로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한 사람은 박굉유였다.1884년 박영효와 김옥균이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이때 호산학교 출신 무관들이 앞장섰다가 정변이 실패하면서 대부분 살해됐다. 김옥균은 일본으로 망명했는데, 정부는 일본에서 공부 중인 국비 유학생들이 그와 결탁했다고 의심했다. 정부의 소환에 1886년 6명이 귀국했고, 이들은 바로 처형됐다. 박굉유를 비롯해서 귀국을 거부한 유학생의 경우 가족을 모조리 처형했다. 가족에 대한 죄책감, 학비 조달과 생계의 어려움, 조선 정부에 대한 실망이 겹친 박굉유는 1888년에 자결했다.일본 군사학교에 진학했다고 이들을 친일파라고 매도할 수는 없다. 일본 육사의 조선인 생도 중에는 독립운동에 투신한 인물도 있다. 만주로 탈출하는 데 실패하고 일본군에 복무했어도 조국을 부강하게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졌던 인물도 많다. 귀국한 6명이나 박굉유가 이념적으로 개화파에 동조했다고 하더라도 사형당할 만한 일을 한 적이 없다.어떤 나라에서나 군대는 정치인에게 부담스러운 존재다. 하지만 군대는 정치인이 아닌 국가와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군의 정치 중립은 정치인의 통제가 아니라 민도에 달린 것이다. 정치가 군을 과도하게 흔들면 피해는 국가와 국민이 입는다. --임용한의 전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