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선종<2>......장례 절차 진행 미카엘 6 76 04.24 13:17 교황 시신 공개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 ‘애도 인파’ 23일(현지 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 약 2만 명의 시민이 운집한 가운데 추기경단과 스위스 근위대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시신을 운구하고 있다. 이날 생전 거처였던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옮겨진 교황 시신은 사흘간 일반에 공개돼 조문을 받게 된다. 바티칸=AP 뉴시스교황청 성직자부장관 유흥수 추기경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 추기경(사진)이 21일(현지 시간)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을 애도하며 “한국 사랑이 정말 남달랐던 분”이라고 회고했다.유 추기경은 이날 교황 선종 뒤 소집된 첫 추기경 회의에 참석해 장례 절차를 논의했다. 추기경단은 26일 오전 10시 성 베드로 광장에서 장례 미사를 거행하기로 했다. 2, 3주 뒤 시스티나 성당에서 교황을 뽑는 추기경단 비밀투표인 ‘콘클라베(Conclave)’에도 참여한다. 천주교 제주교구는 지난 21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분향소를 중앙주교좌성당에 설치해 운영한다. 이날 분향소가 설치된 중앙주교좌성당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영정을 마주한 추모객이 선 채로 눈물을 훔치고 묵상에 잠겼다. 분향소 운영은 25일까지다.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 앞 광장에서 23일 일반인 조문객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21일(현지 시간)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추모 미사가 24일 오전 서울 중구 천주교 서울대교구 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됐다. 미사를 집전한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는 “평생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증거하셨던 교황님께서 이제 주님 품 안에서 영원한 평화를 누리시기를 기도한다”며 애도했다. 사진공동취재단 25일 제주중앙주교좌성당에 마련된 프란치스코 교황 분향소에서 조문하고 있는 오영훈 제주도지사. (사진=제주도) 26일(현지 시간) 바티칸에서 거행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미사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관이 성 베드로 광장으로 운구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이날 장례미사에는 앞줄에 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부인 멜라니아 여사(가운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 등을 포함한 170여 개국 대표단이 참석했다. 바티칸=AP 뉴시스 26일(현지 시간) 프란치스코 교황의 관을 운구하는 차량이 이탈리아 로마의 대표적 유적인 콜로세움 앞을 지나고 있다. 이 차량은 교황이 행사 때 타던 의전 차량 ‘포프모빌’을 개조한 것이다. 장례미사 직후 바티칸을 떠난 차량은 로마 시내를 가로질러 장지인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으로 향했다. 로마=AP 뉴시스 이탈리아 로마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에 마련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묘. 로마=AP 뉴시스 "생을 소외된 자들과 함께한 프란치스코 교황”가톨릭 사상 첫 남미 출신 교황으로 ‘가난한 이들의 성자’로 불렸던 프란치스코 교황(사진)이 21일(현지 시간) 선종했습니다. 전 세계 가톨릭 신자 13억 명의 영적 지도자였으며, 생전에 ‘자비의 사도’로 불리며 사랑받았던 분입니다.교황의 원래 이름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입니다. 1936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탈리아 이민자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한때 화학 기술자로 일했지만 21세에 사제의 길로 들어서 1969년 사제품을 받고 예수회에 입회했습니다.2001년 추기경으로 임명된 교황은 2013년 베네딕토 16세의 뒤를 이어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최초의 예수회 출신이면서 남미 출신으로,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택한 첫 교황이었습니다. 가난한 자의 수호성인이었던 프란치스코 성인의 정신을 잇는다는 의미였습니다.신부로 있으면서 라틴 아메리카의 빈곤과 불평등을 목격했던 교황은 재임 기간 내내 교황청 개혁, 빈곤 퇴치, 환경 문제 개선, 난민 보호 등에 앞장섰습니다. 그래서 이전 교황들이 교리와 제도에 묶여 사회적 이슈에 대해 발언하기를 주저하던 것과 달리 과감한 개혁 메시지를 내놓기도 했습니다.그러면서 교황은 언제나 포용과 연대를 강조했습니다. 성 소수자, 무슬림, 비신자에게도 손을 내밀었고, 정치적·종교적 이념을 초월한 사랑과 자비를 강조했습니다. 또 검소했습니다. 호화로운 바티칸 전통을 거부하고 소형차로 이동하고 사도 궁이 아닌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르곤 했습니다.한국과 인연도 깊습니다. 즉위 이듬해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교황은 소외되고 상처받은 이들을 가장 먼저 만났습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북한 이탈 주민, 외국인 근로자, 장애인을 초청해 그들을 끌어안고 위로했습니다.교황의 방문은 한국 사회에 크고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 11년 전 노란 리본을 달고 “울어도 됩니다. 그러나 결코 희망을 놓지 마십시오”라고 위로해 주던 교황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다”고 말하는 세월호 유가족도 있습니다.교황의 생애는 권위보다는 겸손을, 특권보다는 나눔을 선택한 삶이었습니다. 종교를 넘어 시대의 본보기가 되었던 그는 선종 직전까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휴전을 위해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의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의진 도선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