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난주 마리아 성지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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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난주 마리아 성지 순례

미카엘 5 95
                    ​“정난주 마리아 성지” 

정난주(마리아, 1773~1838)는 당대 최고의 실학자 정약용의 조카이다.

일찍이 천주교에 입교했으며 1791년 황사영과 혼인했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황사영은 박해의 참상과 순교자 현황

그리고 신앙의 자유를 위한 외국의 지원을 청하는 “황사영백서(黃嗣永

帛書)”를 작성하여 외국으로 보내려 하였으나 발각되어 순교하였다.

황사형의 어머니는 관노로 전락되어 거제도로 귀양을 간다. 

 

이때 그의 처 정난주는 2살난 아이와 함께 제주도에 유배된다.

모정을 버리지 못해 아이를 안고 제주도에 가면 성장하여 노예가 된다.

어머니는 옷섭에 ‘황사영의 아이’라고 적고 뱃사공과 호송관리를 설득

추자도 예초리 해안가 바위 위에 내려 놓고 혼자 제주도에 들어간다.

아이는 다음 날 아침 오씨 성을 갖인 노인에게 발견되어 두 부부가

목숨을 걸고 아이를 기른다.


혈혈단신으로 대정현 관노로 유배된 정난주는 유배의 모진 시련을 신앙과

인내의 덕으로 이겨냈으며 풍부한 교양과 학식으로 주민들을 교화하여

노비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서울 할머니”로 칭송을 받아 왔다.

 

유배생활 38년째인 1838년 병환으로 숨을 거뒀다.

그녀를 흠모하던 이웃들이 이곳에 유해를 안장하여 지금에 이른다.


                                                  --대정음 신평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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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도를 바라보고 있는 십자가>


1908년 5월부터 선교사가 들어와 전교한 기록이 남아있는 추자도에는

1956년부터 제주중앙 성당관할 공소가 시작되었다.


1988년 추자 공소는 서문 성당 관할로 이관되었고, 상추자도 항구 인근에

위치한 추자 공소 신자들은 황경한 묘소를 돌보아 왔다.


제주교구는 1999년 제주 선교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하추자도에

있는 황경한의 묘소 주변 부지 600여 평을 매입하여 소공원을 조성하는

성역화를 추진했다.


눈물의 십자가는 높이 5.5m, 가로 3m로 정난주 마리아의 눈물이 십자가에

맺혀 하늘로 오르는 모습이라고 한다.

                                                     --2025, 8, 17--

5 Comments
미카엘 08.17 13:35  
<정약용과 김정희>
ㅡ두분 정조 시대 실학자. 정약용은 1762년생, 김정희는 1786년생
ㅡ정약용은 강진에서, 김정희는 대정골에서 유배생활을 한다.
ㅡ정약용은 유배생활 중 '목민심서' 등 수많은 저술을 하고,
  김정희는 '새한도'를 남겼고 추사체'를 완성한다.
ㅡ정난주는 정약용의 조카 딸이고  황사형은 조카 사위다.
미카엘 08.17 13:37  
<정약용과 추사>
추사가 정약용보다 14살 아래다. 두분은 같은 실학자로서 절친한 사이로 전해진다.
정약용은 강진에서, 추사는 제주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서로 서신을 주고 받기도하고,
한때는 추사가 강진까지 가서 약용을 만나기도했다고 전한다. .
정약용이 조카 딸인 난주의 유배생활을 물었을 것이고,사망 후 묘의 위치를 비롯 황경한의
소식까지도 물엇을 것이다.
추사 기념관에 위와 관련된 사료가 전연 없어 아쉬웠다.
미카엘 08.17 13:39  
<정난주와 추사>
ㅡ정난주는 1773년 출생, 1838년에 65세 나이로 대정 유배지에서 병사한다.
ㅡ1801년 신유 박해 때 제주로 귀양온다.
ㅡ추사가 제주에 유배오기 2년 전인 1838년 37년간 귀양생활 끝에 병사한다.
ㅡ추사는 정난주의 귀양생활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미카엘 08.19 19:26  
<다산, 초의선사, 추사는 차의 대가>
초의선사가 다도의 길에 들어서고 다선삼매(茶禪三昧)의 경지에 이른 데는
다산 정약용의 영향이 컸습니다.
차의 언덕을 의미하는 ‘다산(茶山)’이라는 호에서 알 수 있듯이 정약용은
무척이나 차를 좋아했습니다. 그가 차에 깊이 빠진 계기는 1801년부터
시작된 전남 강진에서의 유배생활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소식이 돼지고기로 화병을 다스렸다면 다산은 차로 화병과 속병을 다스린
것입니다. 다산도 처음에는 차를 받아 마시는 수준이었지만 나중에는 손수
제조해서 마시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미카엘 08.19 19:27  
<황경한 후손>
추자도 예초리 주민 오씨 부부에게 발견되어 양육된다.
황경한은 성장하여 결혼 '건섭'과 '태섭' 두 형제를 두었다.
그 후손이 아직도 추자도에 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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