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주년 광복절 경축식 미카엘 7 58 08.16 10:55 이재명 대통령 경축사 <AI로 되살아난 독립운동가와 “대한독립 만세>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81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대한민국 만세’ 삼창을 하고 있다. 무대 뒤편에선 독립유공자 조소앙 이회영 김구 안창호 정세권 김용관 선생을 인공지능(AI)으로 구현한 영상이 상영됐다. --김재명 기자-- --이 대통령 경축사 요지-- 이재명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전쟁을 종식하고 한반도의 불안정한 정전 체제를 평화 체제로 바꾸는 여정에 나설 것”이라며 “서로에 대한 상호 위협 의사를 내려놓고 아주 오래된 전쟁을 끝내기 위한 당사자들 간 논의를 시작하자”고 말했다. 이재명 정부의 남북 관계 복원 시도에도 북한이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지만 다자 대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 체제 전환 구상을 밝힌 것이다.이 대통령은 이날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81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북(北)의 핵 능력 고도화를 멈출 실효적 방안도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 대통령은 “적대와 대결의 에너지를 평화 공존과 공동 번영의 동력으로 바꿔낼 것”이라며 “페이스메이커이자 한반도 평화의 당사자로서 역할과 책임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 대통령이 취임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대화 재개를 중심으로 한 페이스메이커 전략이 아직 뚜렷한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다자 대화를 통한 평화 체제 전환 구상을 밝힌 것이다. 이 대통령은 ‘당사자들’을 특정하지 않았지만 남북뿐만 아니라 남북미 3자 또는 중국을 포함한 남북미중 4자 대화를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신규진 기자-- <북미 정상회담 의지 드러내>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5일 트루스소셜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만난 사진(사진)을 올리며 “김정은과 나는 아주 잘 지낸다고 밝혔다. 집권 1기 시절의 북-미 정상외교를 거론하며 김 위원장과의 직접 대화 가능성을 열어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신진우 특파원-- “김정은, 딸과 함께 열사릉 찾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광복절을 앞둔 14일 부인 리설주, 딸 주애와 함께 대성산혁명열사릉을 찾았다고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5일 보도했다.김정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은 81주년 광복절을 맞아 축전을 주고 받으며 협력의 의지를 재확인했다. --노동신문 뉴스1-- “매국노 이완용”이완용은 우리 근현대사에서 대표적인 친일파이자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의 대명사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의 삶을 거슬러 올라가면 조금 뜻밖의 이력이 드러납니다.경기 광주시에서 태어난 이완용은 25세에 과거에 급제해 관직에 진출했습니다. 1887년 미국으로 건너가 당대 누구보다 먼저 근대 문물을 접했고, 귀국 후에는 대표적인 친미파 관료로 활동했습니다. 더 놀라운 건 그가 한때 서재필, 윤치호 등과 함께 자주독립과 근대적 개혁을 내세운 독립협회에서 활동했다는 점입니다.그러나 그의 선택을 좌우한 것은 신념보다 힘의 향방과 자신의 안위였습니다. 국제 정세가 바뀔 때마다 그는 풍향계처럼 움직였습니다. 미국의 영향력이 커지면 친미파로, 러시아가 득세하면 친러파로 돌아섰습니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가 확실해지자 이번에는 일본을 택했습니다. 승기를 잡은 일본이 을사늑약 체결을 강요하자,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오적’은 이에 찬성했습니다. 고종의 반대에도 조약은 체결됐고,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잃고 사실상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했습니다.내각총리대신에 오른 이완용은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와 대한제국 군대 해산에도 관여했습니다. 민심은 들끓었습니다. 1909년 12월 명동성당을 나오다 독립운동가 이재명의 칼에 찔려 중상을 입기도 했습니다. 이듬해 8월 이완용은 일본 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와 한일병합조약 체결을 협상하고 순종을 압박해 병합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을사오적 이완용이 결국 나라를 일본에 넘긴 ‘경술국적’까지 된 겁니다.일본은 그의 ‘공로’를 잊지 않았습니다. 백작 작위를 내리고 이후 후작으로 승격시켰으며, 거액의 돈과 훈장도 안겼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뒤에도 그는 조선총독부의 자문기구와 친일단체에서 활동하며 죽을 때까지 식민통치에 협력했습니다.15일은 광복절이었습니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희생한 분들뿐만 아니라 그 반대 역시 돌아봐야 합니다. 역사는 결정적인 순간에 책임이 있는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광복절을 지나며 이완용이라는 이름을 다시 기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의선 도선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