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기념 성당

홈 > 참여공간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제주 4.3 기념 성당

미카엘 10 2786
fdced31cffc1c3c52ccb4ac750fb0698_1648474609_91.jpg

 

fdced31cffc1c3c52ccb4ac750fb0698_1648474715_63.jpg


fdced31cffc1c3c52ccb4ac750fb0698_1648474871_66.jpg


fdced31cffc1c3c52ccb4ac750fb0698_1648474948_16.jpg

 

fdced31cffc1c3c52ccb4ac750fb0698_1648475053_06.jpg


fdced31cffc1c3c52ccb4ac750fb0698_1648475114_64.jpg


fdced31cffc1c3c52ccb4ac750fb0698_1648475193_37.jpg


fdced31cffc1c3c52ccb4ac750fb0698_1648475305_8.jpg


a45e7cfe3cba51a50cea11fffdfada9c_1653468840_38.jpg

 

a45e7cfe3cba51a50cea11fffdfada9c_1653469315_03.jpg

 

 

10 Comments
미카엘 2022.03.28 23:31  
중문면 전채 희생자 786명 중에서 신사터(성당 후정.성당 들어서기 전)에서
희생되신 분이 71명입니다.
미카엘 2022.03.30 19:58  
제74주년 제주4·3 추념식을 앞두고 일반재판과 군사재판 수형인 73명이 전원 무죄판결을 받았다.
제주지방법원 형사제4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29일 제주4·3 당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군사재판 수형인 40명과 일반재판 수형인 33명 등 총 73명에 대해 첫 번째 재판을 열고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특히 제주4·3특별법 개정 이후 첫번째 직권 재심이 이뤄진데다 일반재판에 회부된 희생자들 역시
억울한 누명을 벗으면서 이들의 명예를 회복하는데 한 걸음 다가섰다는 평가다.
출처 : 제민일보(http://www.jemin.com)
미카엘 2022.03.30 20:29  
"쟁점 사항"
ㅡ군사재판 수형인과 다르게 일반재판 수형인의 경우 수형인 명부가 존재하지 않아
  개별적으로 소송을 진행해야 했다.
ㅡ미 군정이 내린 판결을 "주권 면재의 이유"로 대한민국법원에서 심리를 진행할 수
  있는지 여부가 쟁점으오 떠오르기도 했다.
ㅡ청구권자 범위에 대해서는 모두 3촌 이내의 친족 조카들로 "4.3 특별법에서 정한
  재심청구권자"에 포함된다고 봤다.
미카엘 2022.04.01 10:47  
<김대중 대통령>
1998년 11월 23일 미국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제주 4.3은 공산당의 폭동으로 일어났지만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많으니 진실을 밝혀 누명을 벗겨줘야 한다'고
4.3의 성격을 천명 했다.
미카엘 2022.04.01 11:02  
<문재인 대통령>
2018년 제70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제주 4.3은 국가 폭력으로서 이념은 단지 학살을 정당화하는 명분에
불과했으며 제주 4.3의 진실은 국가 공권력이 저지른 학살임을 어떤 세력도 부정 할 수 없는 분명한 역사적
사실임을 선언합니다"라고 말했고.
또 2020년 제72주년 4.3 희생자 추모식에서는 "누구보다 먼저 꿈을 꾸었다는 이유로 제주는 처참한 죽음과
마주했고 통일 정부 수립이라는 간절한 요구는 이념의 덫으로 돌아왔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미카엘 2022.04.01 11:05  
<평화와 상생>
나무도 보고 숲도 보고, 숲도 보고 나무도 봐야겠습니다.
4.3은 냉철한 머리보다는 뜨거운 가슴으로 바라 봐야겠습니다.
용서와 화해는 기도와 사랑입니다.
미카엘 2022.04.22 22:11  
<제주도 인구>
ㅡ8.15해방 전 주둔 일본군은 6만명이였다.
ㅡ해방을 맞이하여 일본 등지에서 귀국한 인구 6만명.
ㅡ4.3당시 제주도 인구 27만~ 28만명으로 본다.
ㅡ인구는 팽창하는데 흉년까지 겹쳐 식량이 절대 부족하였다.
미카엘 2022.04.23 13:11  
<제주 4.3 이름 짓기>
제주 4.3에 대한 공식 명칭을 정하지 못해 비를 세우지 못하고, 백비 상태로 기념관에 눕혀 놓고 있다.
제주 4.3은 보는 시각에 따라 복잡하고, 견해를 달리 해 그 호칭도 다양하다.
ㅡ제주 4.3사건
ㅡ제주 4.3폭동사건
ㅡ제주 4.3반란사건
ㅡ제주 4.3무장붕기사건
ㅡ제주 4.3인민(민중)항쟁 등으로 불려왔다.
(김영중 편저 "내가 보는 제주 4.3사건") 중에서
미카엘 2022.04.29 22:56  
<광복 이후 남로당의 이념투쟁>
ㅡ1946년
  *1월 찬탁투쟁
  *9월 총파업투쟁
  *대구 10.1투쟁
ㅡ1947년
  *3.1절 기념투쟁
  *제주 3.10파업투쟁
  *7.27 투쟁
ㅡ1948년
  *2.27구국투쟁
  *제주 4.3투쟁
  *5.10선거저지투쟁
  *8.28북한정권창건지원투쟁
ㅡ1950년
  *6.25남침
미카엘 2022.04.29 22:57  
<인민군환영준비원회 사건>
1950년 8월 1일 인민군환영준비위원회가 "북한 인민군이 제주도에 상륙하면 이를 환영하기
위하여 제주도 유지들이 환영회를 조직하였다"고 허위 사실을 제주지구 계엄사령부에 무고하여
법원장, 검사장, 도총무과장, 서무과장, 상공과장, 제주읍장, 도립병원장이 구속된다.
김충희 도지사가 신성모 국방장관과 조병욱 내무부장관에게 보고, 사실 조사결과 허위로 판명,
석방된 사건이다.
세칭 제주도 유지사건이다....."김영중 "내가보는 제주4.3사건"

해방 정국의 혼란스러웠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다.

 주일

 오전 6시~12시 30분

 

 

 

 오후 4시~ 7시

 

 

 평일

 오전10시~12시

 

 

 

 오후2시~20시

 

 

 휴무

 월요일/목요일/공휴일

 

 

 

 

 

 

 TEL

 064) 738-6123

 

 

 FAX

 064) 738-6122

 

 

 E-mail

 lover4826@naver.com

 

  • 오늘 방문자 1,557 명
  • 전체 방문자 495,561 명